<송일훈 칼럼> 충무공 이순신 상무혼을 부르다 (4)상무적 기풍 역사적 인식 재검토!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7-09-17 15:59:59
  • -
  • +
  • 인쇄

▲ © 세계타임즈
 “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전쟁 중에서 쓴 일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시기부터 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1592년부터~1598년까지)에 있었던 진중 내·외의 일을 적어 놓은 기록을 말한다.

 


 “난중일기”이란 이름은 충무공 이순신 본인이 붙여서 부른 이름이 아니다. 그가 전사한지 200년이 지난 1795년 정조때 이를 “이충무공전서”로 다시 편찬 할 때 편의에 따라 붙어진 이름이다. “이충무공전서”는 정조의 명령으로 규장각 문신인 윤행임과 예문관 검서관 유득공이 1793부터 3년간에 걸쳐 그의 모든 행적을 들추어내어 총 14권으로 편찬했다. 이 가운데 그의 일기는 5권부터 8권 사이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일기에는 85개월 2539일의 기간 중에 1593일간(52.7%)만이 기록되어 있고 946일간(37.3%)의 기록이 빠져 있다. 이는 편찬자들이 충무공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가 정자로 베껴 판각에 올릴 때 일부를 생략하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하면서 생긴 오류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에는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기록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들을 묘사하고 있어서 그의 다양한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기의 일부가 소실되어 있는 “이충무공전서”의 기록을 보완해줄 사료로서 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이순신의 친필 초고 본으로 전해지는 “난중일기”가 소장되어 있다. 이는 임진 장초 및 충무공의 서간문 등과 함께 1995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보관되어 오고 있다.


 “난중일기” 충무공 이순신 상무적 기풍을 보면 임진년 6월 5일에 왜적들에게 활을 쏘아 섬멸했다. 임진 6월초 5일 계모 아침에 떠나서 고성 당항포에 이르니 왜의 큰 배 1척이 크기는 판옥선만한데 배의 누각이 우뚝 섰고 명색 적장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중간 배가 12척이요, 작은 배가 20여 척이 있었는데 한꺼번에 적을 수탕할 수 있었다. 아군이 동시에 화살로 왜구를 공격하니 죽은 자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구의 수장들의 7명의 목을 베었고 남은 왜구들은 산으로 피신했는데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로 올라가는 기세였다(壬辰 六月 初五日 朝發 到固城唐項浦 則倭舡一隻 大如板屋舡 舡上樓閣巍巍 所謂將者坐其上 中舡十二隻 小舡二十隻 一時撞破 射矢如雨 逢箭者不其數 斬首倭將幷七級 餘倭下陸登走 然所餘甚少 軍聲大振).


 계사 3월 17일 임신 맑다. 종일토록 큰 바람이 불었다. 우수사와 활을 쏘았다. 그가 아주 형편이 없으니 무장으로서 자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무인으로서 창피한 일이다. 신경환이 와서 임금의 분부를 가져온 선전관 채진, 안세걸이 본영에 왔다. 그는 곧 돌아갔다(癸巳 三月 十七日壬申 晴 狂風終日 與右水伯射侯 不成模樣 可笑 申景潢來 傳宥旨宣傳官來營云 卽還送).

 이날 이순신은 ‘그의 궁술이 아주 형편이 없으니 무장으로서 자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무인으로서 창피한 일이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에서 드러나듯이 이순신은 무인으로서 무예를 못하는 장수들을 납득하지 못했다.


 계사 5월 13일 병인 맑다. 조그마한 산등 위에 소포를 치고 순천, 광양, 방답, 사도, 오후 그리고 발포 등 여러 장수들과 편을 갈라 활을 쏘아 시합을 하던 중 도언량이 왔다. 이날 밤 달빛은 배위에 가득 차고 혼자 앉아서 생각을 하는데도, 나라 일에 온갖 근심걱정이 가슴을 치밀어 자려해도 잠이 오지 않다가 닭이 울어서야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癸巳 五月 十三日丙寅 晴 食後小峰頂張帿 與順天 光陽 防踏 蛇渡及虞侯 鉢浦 分邊爭雄 日暮下船 夜聞嶺南右水使處宣傳官都彦良來云 是夕 海月滿船 獨坐轉展 百憂攻中 寢不能寐 鷄鳴假寐).


 갑오 9월 28일 계모 흐리다. 새벽에 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적을 무찌르는 생각으로 병법을 준비해 보았는데 활이 살을 얻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고(如弓得箭) 다시 병법을 생각하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如山不動).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흉도안 바다에 진을 치고서 눈을 부칠 수 있었다(甲午 九月 二十八日 癸卯 陰 曉明燭獨坐 討賊卜吉 則初占 如弓得箭 再占 如山不動 風不順 陣于胸島 內洋宿).


 갑오 9월 29일 갑진 맑다. 배를 띄워 장문포 앞바다로 돌입하니 적의 무리는 험준한 곳에 웅거하여 나오지를 아니하니 누각을 높여 짓고 양족 봉우리에는 벽루를 쌓고 있으면서 요지부동하여 싸우려 하지 않았다. 선봉 적선 2척을 무찔렀더니 그만 육지로 올라 도주하였다. 빈 배만 불태워 깨뜨리고 칠천량에서 밤을 지냈다(甲午 九月 二十九日 甲辰 晴 發船突入場門浦前洋 賊徒據險不出 高說樓閣 築壘兩峯 略不出抗 先鋒賊船兩隻剿擊 則下陸逃遁 空船撞焚 漆川梁經夜).


 이상의 기록을 보더라도 이순신 그는 바쁜 공무 중에도 활을 놓는 날이 거의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리고 왜적들이 침략을 감행한 순간까지, 그는 책 읽는 것과 활 쏘는 것 그리고 일기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그는 무예의 수행을 통해 병법의 전략을 세웠다.
 이처럼 이순신은 공무를 마친 후면 꼭 활터로 향해 활을 쏘았으며 세찬 바람 앞에서도 활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항상 상무적 마음으로 활을 쏘며 심신을 수양했다. 이러한 상무적 기풍으로 이순신은 단 한 번도 임진왜란에서 패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활을 쏘았을까! 그의 마음속에는 첫째도 국가의 안위요, 둘째도 국가의 안위였다. 겨우 12척의 함대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을 때도 그리했고, 백의종군의 몸이 됐을 때도 그리했다. 거센 바람 앞에선 타오르는 등불과 같은 강인한 마음은 상무적 기풍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했다.


 이후 그는 임진왜란 당시 가장 훌륭한 명장으로서 충무의 시호와 함께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에 책록 되고 덕풍군으로 봉해진다. 오늘날에도 이순신의 충성심은 국난극복에 대한 상징이며 그는 전 국민의 성웅으로 한민족의 사표로 받들어지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을 상무적 기풍이라 한다. 그는 상무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었고 국가의 안위까지도 지켜낼 수 있었다. 이로서 그는 오늘날에도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영웅으로 칭송한다.


 이순신, 그는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세월 속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자아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다. 그는 하루 빠짐없이 공부를 했으며 문장력 또한 탁월했다. 특히 그는 상무적 기풍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켜나갔다. 이 과정 속에서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이 탄생했다.


 우리 선조들은 역사 이래 수없는 침략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오천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오천년 역사를 유지할 수 있는 저력에는 항상 상무적 기풍이 있다. 오늘날 우리 잠재의식 속에 살아있는 상무정신은 선조들이 물려주신 정신적 유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조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민족이 사라지지 않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험난한 국제정세 속에서 새로운 제2, 제3의 이순신의 상무적 기풍이 필요한 지금, 한반도는 매우 불안하다. 특히 북한 김정은 정권은 아직도 핵무장을 통해 무력통일을 꿈꾸고 있으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역시 지나친 한반도 내정간섭(內政干涉, interference in internal affairs)을 하고 있으며 또 사드배치로 인해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혼란 속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는 국가관마저 흔들리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마저 낳고 있다. 우리정부와 국민은 우리 스스로 자국 안보 강화 상무적 기풍을 형성하고 진정한 국가관을 형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저작권자ⓒ 경기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세계타임즈 구독자 여러분 세계타임즈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계타임즈몰 입니다.
※ 세계타임즈몰에서 소사장이 되어서 세계타임즈와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합시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 132-910028-40404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 구독자 여러분의 후원과 구독이 세계타임즈 지면제작과 방송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타임즈 후원 ARS 정기회원가입 : 1877-0362

세계타임즈 계좌후원 하나은행 : 132-910028-40404

후원하기
조원익 기자 조원익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